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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현장에서 신시의 풍경으로 : 음악·공연·전시 : 문화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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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최민화 개인전 ‘원스 어폰 어 타임’]
지난 26일 갤러리 현대 전시장에서 만난 최민화 작가. 전시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제 환웅 신시에 오다> 앞에서 출품작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고대사 기록들을 형상화할 마땅한 그림 전범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동서고금의 고대사가 녹아든 역사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갤러리 현대 전시장에서 만난 최민화 작가. 전시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제 환웅 신시에 오다> 앞에서 출품작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고대사 기록들을 형상화할 마땅한 그림 전범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동서고금의 고대사가 녹아든 역사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화가 최민화(66)씨는 한국의 진보미술 진영에서 사실주의(리얼리즘) 회화의 투철한 신봉자로 손꼽혀왔다. 그의 작가 인생은 자신의 눈이 사물과 풍경, 시대와 맞닿는 현상을 그대로 그린다는 원칙을 헌법처럼 따르고 지켜온 여정이었다. 청장년 시절 작가는 언제나 시대의 현장에서 붓질을 했다. 1980년대 6월 항쟁 등의 거리시위 현장에서 이한열·김귀정 등 열사의 걸개그림을 그렸고, 90년대 도시 주변부의 룸펜과 항쟁의 지난 기억을 분홍빛 화폭에 담아냈다. 사실주의 화단의 실력자지만, 이른바 운동권과 아웃사이더라는 꼬리표 또한 따라다녔던 그가 30여년 만에 상업화랑에 대대적인 개인전을 차렸다. 시대의 관점이 확연히 바뀐 것이다.
아카이브처럼 꾸며진 지하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최민화 작가. 오른쪽에 있는 알몸 남자의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다.
아카이브처럼 꾸며진 지하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최민화 작가. 오른쪽에 있는 알몸 남자의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9월2일부터 열리는 최 작가의 개인전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은 80년대 이후 요동친 작가의 삶 속에서 수십년 숙성된 역사화 작품을 신작처럼 내보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작업실에서 칩거하며 조선상고사 연작을 그리던 그가 2018년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적자로 재조명받고 1년간의 준비 끝에 마련한 전시다. 출품작들은 다소 뜻밖의 도상을 보여준다. 환웅이 용과 함께 내려와 웅녀와 호녀를 간택하는 장면, 알을 깨고 나오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순간, 근육질 서구 청년의 모습으로 말을 타고 활을 당기는 주몽의 모습 등 고대사 혹은 상고사 속 옛사람의 몸짓과 풍경을 오늘날 작가의 인문적 지식과 감수성으로 낯설고도 구체적으로 상상해 재현한 것들이다. 98년부터 그려온 출품작의 면면은 그동안 나온 어떤 인물화나 역사화와도 다르다. 더욱이 과거 열정적인 미술운동 활동가이자 리얼리즘 미술의 신봉자였던 작가의 이력과 미묘한 차이를 빚어내며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1층 전시장 들머리에 나온 <호녀>. 단군신화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토굴에 은거해 환웅과 결혼하는 웅녀와 달리 운명을 거부하고 토굴을 나간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호녀를 묘사했다.
1층 전시장 들머리에 나온 호녀>. 단군신화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토굴에 은거해 환웅과 결혼하는 웅녀와 달리 운명을 거부하고 토굴을 나간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호녀를 묘사했다.
왕년의 현장 미술 활동가가 상업화랑의 주력 작가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상업적 코드에 맞춘 화풍의 변신이 아닐까 예단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최 작가는 70년대 이래 견지해온 리얼리즘에 대한 인식 틀과 작법을 나름의 논리로 풀어내고 있다. 오늘날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삼국유사>에서 드러나는 고대의 신화적 서사를 형상화해 보려는 노력이다. 그 결과 출품작은 전통 불화나 민화, 풍속화, 인도의 힌두 미술, 서구의 르네상스 회화 등과 혼성한 독창적인 이미지를 빚어냈다. “80~90년대 항쟁을 벌였던 이 땅 민중의 정신적 원형을 생각하다 우리 고대사 시·공간의 구체적 형상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삼국유사>를 주목했는데, 숱한 설화 중 어떤 것도 그림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전범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국외 답사와 동서고금의 미술사를 섭렵하는 고대사의 서사화 작업을 시작한 겁니다.”
최민화 작 <가섭원 가는 길>. 고대 중앙아시아에서 농작물을 등에 진 정착민과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유목민이 만나는 장면을 재치있게 상상하며 그렸다.
최민화 작 가섭원 가는 길>. 고대 중앙아시아에서 농작물을 등에 진 정착민과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유목민이 만나는 장면을 재치있게 상상하며 그렸다.
대부분의 출품작은 붓으로 엷게 그리되 윤곽선을 섬세한 세필로 처리해 아련한 고대의 기억을 살려내는 얼개를 띤다.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회화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풀어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르네상스 명화의 도상을 고구려, 신라, 가야 등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영웅, 고대의 이상적인 도시인 신시의 풍경에 집어넣었다. 물론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단원의 군선도 도상이 그대로 들어간 신시> 풍경에서 보듯, 자유자재로 후대 미술사의 도상을 여기저기 끼워 넣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상고사의 인물과 사건을 담은 연작 30여점은 역사 속 세상과 문명을 리얼리즘적 시각으로 주시하고 그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산물이다. 더욱이 이 작업은 20년 넘게 진행한 것이다. 1·2층에 걸린 주요 유화 작품은 이렇게 진행한 드로잉과 에스키스(초벌그림), 수채, 유화의 작은 소품을 최근 1년 사이 그대로 큰 화폭에 유화로 옅게 옮겨 그린 것들이다. 지하층에 이런 작품세계가 형성된 배경과 이면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아카이브 방을 만들어 200점에 가까운 원본 소품을 내건 데서 이런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최민화 작 <달달박박>. <삼국유사>에서 부처를 만나는 유명한 수행자 고사의 주인공을 담은 그림이다. 불화, 민화, 르네상스 회화의 도상들이 배경과 인물 표현에 뒤얽혀 나타난다.
최민화 작 달달박박>. 삼국유사>에서 부처를 만나는 유명한 수행자 고사의 주인공을 담은 그림이다. 불화, 민화, 르네상스 회화의 도상들이 배경과 인물 표현에 뒤얽혀 나타난다.
이번 전시는 역사화, 인물화 등의 정통 구상회화의 잠재력을 화랑가에서 본격적으로 부각하려는 첫 시도다. 한국 화단에서 구상회화는 근대기 이래 이쾌대, 이인성 등 대가들의 면면한 전통이 있었지만, 80~90년대 이후엔 모더니즘 추상회화와 설치 영상 등의 압도적 조류에 밀려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부각된 적이 거의 없다. 최민화 작가는 “내 근작은 인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세부 장르의 면모를 모두 품고 있어 다채로운 각도로 구상회화를 볼 기회를 줄 것으로 본다”며 “화단과 화랑가에서 외면당해온 한국 정통 구상회화의 잠재력과 21세기 현대 역사화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11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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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30, 2020 at 01:0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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